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사회에서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고소득자와 고액 자산가에 대한 세금 강화, 이른바 '부유세' 또는 '자산세 강화'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의 경기 불균형, 금리 인상기에 드러난 자산 양극화, 조세 형평성에 대한 국민적 요구는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한국에서 고소득층 및 자산가에 대한 증세 논의의 배경, 현황,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세 가지 측면에서 조명해 본다.
1. 왜 지금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가 논의되는가?
한국은 전통적으로 누진적 소득세 구조를 통해 고소득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체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자산 소득의 집중과 금융 자산의 불균형한 분포는 기존 조세 구조가 사회적 형평성을 완전히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낳고 있다.
▶ 소득 불균형의 심화
2023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상위 10%가 전체 금융자산의 70%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며, 상위 1%는 거의 30%에 달하는 비중을 차지한다. 소득뿐만 아니라 자산, 특히 부동산과 금융소득에서 격차가 크게 벌어졌고, 이는 조세 형평성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 문제
현재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은 연 2000만 원 이상인데, 이는 사실상 고액 자산가들에게 유리한 구조로 작용한다는 비판이 있다. 실제로 상당수 자산가들은 주식, 채권, 펀드 등의 금융자산을 통해 연간 2000만 원 이하의 소득을 다수 계좌로 분산시켜 과세를 회피하는 방식도 활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종합과세 기준을 낮추거나 과세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커지고 있다.
▶ 글로벌 트렌드와의 비교
국제적으로도 고소득층 증세 논의는 활발하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상위 1%에 대한 소득세 인상, 자본소득세율 조정 등을 추진했고, 유럽 국가들 또한 디지털세·자산세 등을 도입하고 있다. 한국 역시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조세 정의의 원칙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2. 금융소득 과세 확대와 자산가 과세의 현실적 접근
고소득층 증세는 단순히 세율을 높이는 것을 넘어서 과세 사각지대를 줄이고, 실질적인 자산 집중 구조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접근되어야 한다. 특히 금융소득과 상속·증여소득에 대한 보다 정교한 과세가 필요하다.
▶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 하향 검토
현행 2000만 원이라는 기준은 20년 전 기준이며, 지금의 금융시장 규모와 금융상품의 다양성을 고려할 때 현실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크다. 만약 이 기준을 1000만 원 또는 1500만 원으로 하향 조정할 경우, 더 많은 고액 자산가들이 종합과세 대상에 포함되어 형평성이 제고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중산층 이상의 금융 투자자들이 과세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도 있어, 중산층과 고자산가 간 구분을 위한 세부기준 마련이 필요하다.
▶ 부동산 자산가에 대한 공정 과세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역시 자산가 과세의 핵심 수단이다. 최근 정부는 1주택자에 대한 세 부담을 완화하면서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는 유지하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와 함께 부동산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 범위 확대, 주택임대사업자 제도에 대한 조정 등도 검토되고 있다.
▶ 상속·증여세 제도의 현실화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OECD 평균보다 높다. 하지만 실제로 상속세를 내는 비율은 1% 미만으로 극히 낮다. 이는 우회 증여, 차명 자산, 해외 자산 분산 등을 통한 세제 회피 경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상속세 실효성 제고, 증여세 기준 합리화, 디지털 자산에 대한 과세 방안 마련 등이 필요하다.
3. 조세 정의와 경제활동의 균형: 증세의 방향성
고소득층 및 자산가 증세는 형평성을 확보한다는 사회적 목적과 함께, 투자·소비활동 위축이라는 경제적 부작용을 방지하는 절묘한 균형이 필요하다.
▶ 과세는 공정하되 경제를 해쳐서는 안 된다
증세는 단순한 세수 확보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와 참여의 회복을 위한 정책 도구여야 한다. 고소득층에 과도한 부담이 전가되면 기업 활동 위축, 국내 투자 감소, 자본 해외 유출 등의 부작용도 우려된다.
따라서 과세 대상 확대와 세율 조정은 중장기 로드맵과 세심한 설계 아래 단계적으로 추진되어야 하며, 세금 사용에 대한 투명성과 납세자 신뢰 확보도 병행되어야 한다.
▶ 사회적 합의와 납세 의식의 중요성
고소득층의 세금 납부에 대한 사회적 시각은 갈수록 민감해지고 있다. 이들이 부담하는 세금이 복지, 교육, 공공인프라 등 사회 전반에 기여한다는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세금의 투명한 집행, 납세자의 피드백 반영, 조세 교육 강화 등이 필요하다.
▶ 조세 시스템의 디지털화와 공정 과세 강화
탈세·조세회피를 막기 위해 핀테크, 빅데이터, AI 기반의 세무감사 시스템이 본격 도입되고 있다. 고액 자산가의 해외 자산, 암호화폐, 가상 부동산 등에 대한 과세 추적 기술도 함께 강화되고 있으며, 디지털 자산에 대한 과세 체계 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고소득층과 자산가에 대한 증세는 단지 '부자 증세'라는 감성적 접근이 아니라, 조세 형평성과 재정 안정성,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전략적 과제다. 한국 사회가 더욱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누구나 공정하게 부담하고, 모두가 함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세제 구조가 필요하다.
앞으로의 조세 개편 논의에서는 감정적 프레임보다 데이터에 기반한 객관적 분석과 사회적 합의에 근거한 정책 결정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공정한 세금이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는 명제를 실현할 수 있는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